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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박하사탕 리뷰 – “나 다시 돌아갈래!” 그 절규의 의미

by bloggerjinkyu 2025.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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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크립션

영화 박하사탕은 이창동 감독이 연출한 두 번째 장편 영화로, 1999년 당시에는 드물었던 역순 서사 구조를 통해 한 남자의 삶을 거꾸로 추적한다.
기찻길 앞, "나 다시 돌아갈래!"를 외치며 달려드는 주인공 ‘영호’(설경구)의 절규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그의 삶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한 개인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그의 맑았던 청춘이 어떻게 타락했는지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단순한 인생 이야기 같지만, 그 속에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굴곡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이 영화는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과, 시스템에 의해 변형되어버린 한 청년의 비극을 통해 한국 사회가 잃어버린 순수에 대해 성찰한다.


1. 시간의 역주행 – 무너져가는 한 인간의 해부

박하사탕은 일반적인 서사구조를 뒤집는다. 영화는 현재에서 시작해, 점차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독특한 구성은 처음에는 관객을 혼란스럽게 만들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 방식이야말로 영호라는 인물을 가장 정확하게 이해하는 방법임을 알게 된다.

  • 기찻길, 죽음으로 시작되는 이야기
    영화는 영호가 철로 위에서 기차를 향해 "나 다시 돌아갈래!"를 외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 장면은 하나의 ‘결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영호가 무엇을 되돌리고 싶은지를 묻는 인생의 출발점이다.
    죽음이라는 종착지에서 과거로 거슬러 가는 서사는, 한 남자의 인생을 복기하며, 그가 어떻게 ‘괴물’이 되었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 무너짐의 순간들, 잔인할 만큼 차갑게 묘사된 일상
    시간은 1999년에서 1979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영호의 삶을 총 7개의 시점으로 나눈다.
    우리는 경찰이 되어 고문을 일삼던 그를 보고, 사업에 실패하고 인간관계를 망가뜨리는 그를 본다.
    그가 저지른 모든 행위가 현재에서 보면 용서받을 수 없는 악행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거꾸로 갈수록 우리는 그가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변해갔는지를 알게 된다.
    결국 영화는 "그도 한때 순수했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며, 사회가 한 사람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정밀하게 해부한다.
  • 역행하는 시간, 퇴색하는 삶
    일반적인 영화에서 시간은 인물의 성장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의 시간은 ‘타락의 흔적을 지우는 여정’이다.
    영호가 과거로 갈수록 더 순수해지고, 더 인간적인 모습을 되찾는 그 아이러니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저미게 만든다.

2. 박하사탕, 그리고 순수의 상징 – 잃어버린 청춘

‘박하사탕’은 단지 영화 제목이 아니다.
그것은 영호가 되돌아가고 싶은 유일한 순간, 그가 진짜 자신일 수 있었던 마지막 기억의 상징이다.

  • 순수했던 첫사랑, 그리고 부서진 기억
    영화의 마지막(시간상으로는 가장 과거) 장면에서 우리는 ‘영호’라는 인물의 본모습을 본다.
    고등학생 시절의 영호는 수줍고, 세상을 몰랐고, 순정적인 사랑을 했다. 그가 좋아했던 소녀 ‘순임’은 박하사탕을 건네주며 웃고, 그 순간의 감정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깨끗하고도 아픈 기억으로 남는다.
    순임의 박하사탕은 차갑지만 달콤한, 어린 시절의 감정 그 자체다.
  • 현실이 짓밟은 이상
    이후 영호는 군인이 되어 광주에서 시민을 향해 총을 들고, 경찰이 되어 시위자를 고문하며, 점점 체제의 앞잡이로 변해간다.
    그가 지키려던 소박한 사랑과 순수한 마음은, 어느 순간부터 생존을 위한 폭력으로 바뀌었고, 그 대가로 그는 인간성을 잃어버렸다.
    영호는 알고 있었다. 그 박하사탕 같은 시절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그는 마지막 순간, 열차를 향해 외친다.
  • “나 다시 돌아갈래!”
    그것은 후회의 절규이자, 영호가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절박한 자기고백이다.
  • 모든 관객이 갖고 있는 ‘자신만의 박하사탕’
    이 영화의 위대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누구에게나 돌아가고 싶은 한 시절이 있다.
    박하사탕은 그런 기억을 잊고 살던 관객에게 되묻는다.
    “당신은 어디서부터 무너졌습니까?”

3. 개인의 파멸인가, 시대의 희생양인가 – 한국 현대사의 거울

박하사탕은 영호 개인의 이야기이자, 동시에 한국 현대사의 압축판이다.
그의 인생에 겹쳐지는 수많은 장면은, 단지 개인의 타락이나 선택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영화는 매우 조용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말한다.

“그는 시대에 의해 쓰러진 사람이다.”

  • 광주, 영호의 무너짐의 시작
    군 복무 중 영호는 광주에 투입된다.
    그가 직접 총을 쐈는지, 얼마나 깊이 관여했는지는 명확히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그 현장을 목격했고, 그날 이후 그의 눈빛은 바뀐다.
    이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이진 않지만, 인간성이 꺾이는 첫 지점으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 ‘체제의 도구’로 살아간 삶
    제대 후 경찰이 된 그는 시위자를 고문하고, 체제를 지키는 존재가 된다.
    이는 단지 그의 선택일까, 아니면 당시의 시대적 생존 전략이었을까?
    영화는 선악의 판단을 하지 않는다.
    다만, 그가 그렇게 살아남았고, 그 대가로 사랑도, 가족도, 인생도 잃었다는 결과만을 보여준다.
  • 개인과 사회의 균열
    영호는 끝까지 외롭다. 친구는 떠나고, 가족은 단절되고, 사랑은 멀어진다.
    결국 그는 누구도 품어주지 않는 세상에서, 자신의 끝을 스스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인물로 전락한다.
    그의 죽음은 자살이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건,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구조 자체다.

결론

박하사탕은
✔️ 한 인간의 삶을 통해 한국 사회의 모순을 정밀하게 파헤친 영화이며,
✔️ 사랑, 순수, 청춘이 어떻게 꺾이고 부서지는지를 차갑게 그려낸 비극이며,
✔️ 개인과 시대, 죄와 용서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나 다시 돌아갈래.”
그 절규는 단지 영호 한 사람의 외침이 아니다.
그 시절을 살았던 수많은 이들의, 그리고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속에도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