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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고지전> 리뷰 – 총 대신 질문을 던진 전쟁 영화, 그 참혹함 너머의 인간

by bloggerjinkyu 2025.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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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고지전> 리뷰 – 총 대신 질문을 던진 전쟁 영화, 그 참혹함 너머의 인간

1. 🪖 휴전을 앞두고 더 격렬해진 전투 – ‘고지전’이라는 미친 싸움

전쟁이 끝나가고 있는데, 전투는 더 치열해진다. 이 아이러니는 <고지전>이 품고 있는 가장 강력한 서사적 아이러니이자 현실 고발이다. 1953년 한국전쟁 정전 협상이 진행되던 시기, 비무장지대가 그려지기 전까지 확보된 고지 하나하나가 향후 군사분계선(MDL)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되면서, 전쟁은 끝날 듯 끝나지 않고 오히려 더 치열하게 타올랐다.

<고지전>은 바로 그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남북이 서로 고지를 뺏고 빼앗기는 상황 속에서, 대한민국 국군은 명분도 없이 수많은 장병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영화는 이 전투의 비정함을 고발하면서도, 단순히 총과 포연의 향연에 머무르지 않는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영화가 관객에게 ‘우리는 왜 싸우는가’라는 질문을 계속 던진다는 점이다. 격렬한 전투가 계속되는데도, 명확한 목표나 대의는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이 고지를 점령하면 지도에서 선이 조금 더 위로 올라간다”는 전술적인 이유만 존재할 뿐이다. 이러한 설정은 전쟁의 무의미함과 인간 생명의 가벼움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영화 속 주인공 강은표 중위(신하균)는 전쟁범죄 조사관으로 전선에 파견된다. 그의 임무는 사망한 남군 장교가 공산군과 내통했다는 혐의를 조사하는 것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자신이 보고 듣는 것들에 혼란을 느낀다. 작전의 목적도, 명분도 모호한 상황에서 무고한 병사들이 하나둘씩 전사해가는 현실은 그를 점점 무력하게 만든다.

이처럼 <고지전>은 단순한 영웅 서사를 피하고, 전쟁의 정치성과 그 이면의 냉혹함을 조명한다. 이 영화가 진정한 ‘전쟁 영화’로서 의미 있는 이유는, 총을 쏘는 장면보다 ‘그 총이 누구를 위해, 왜 쏴지는지’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2. 🎭 신하균과 고수, 극과 극의 시선이 만나는 전장의 드라마

<고지전>의 또 다른 중심은 ‘관찰자’와 ‘실행자’의 시선을 모두 담고 있다는 점이다. 신하균이 연기한 강은표 중위는 전선에 직접 뛰어든 참전 병사이기도 하지만, 영화 내내 냉정하게 상황을 바라보며 판단하려는 인물이다. 반면 고수가 연기한 김수혁 중위는 고지전을 지휘하는 현장 지휘관이자, 병사들의 목숨을 담보로 전략을 수행해야 하는 인물이다.

신하균은 특유의 절제된 연기로 강은표의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처음에는 ‘정의’를 찾고자 하는 이상주의자였지만, 고지전의 참상을 직접 목격하면서 그의 시선은 점차 바뀐다. 그는 보고서에 무엇을 써야 할지조차 혼란을 겪는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왔지만, 눈앞에서 계속 벌어지는 죽음과 무의미한 공격 명령 속에서 진실조차 무의미해지는 상황에 놓인다.

고수는 반면 감정을 억누르며 군인으로서의 사명을 다하려는 ‘전쟁 속의 병사’ 그 자체다. 하지만 그는 단지 상부의 명령을 따르는 꼭두각시가 아니라, 병사들을 지키려는 리더로서의 고뇌와 책임감을 안고 살아간다. 특히 전투 후 피투성이가 된 채 명령을 기다리는 그의 모습은, 그가 이 전쟁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잃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두 사람의 대비는 영화 전체를 지탱하는 정서적 축이 된다. 강은표는 "왜 싸우는가"를 묻는 사람이고, 김수혁은 "지금 싸우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고, 결국 같은 결론에 다다른다. “우리는 모두 이 전쟁의 소모품일 뿐”이라는 자각.

신하균과 고수의 연기 호흡은 그 자체로 영화의 중심을 지탱하며, 인간적인 고통과 전쟁의 비극을 가식 없는 리얼리티로 전달한다. 감정적인 폭발이 없더라도, 눈빛 하나와 말 한마디에 담긴 무게는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3. 🔥 총보다 무서운 침묵 – 고지전의 현실성과 미장센

<고지전>은 전투 장면에서 시각적 스펙터클을 과도하게 소비하지 않는다. 오히려 좁고 축축한 참호, 낡은 군복, 먼지와 피에 젖은 얼굴, 조용한 정적 속에 갑자기 울려 퍼지는 총성과 포격 소리로 현장감과 리얼리티를 극대화한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전투는 ‘영웅의 전장’이 아니라 ‘사람을 갈아 넣는 소모전’이다.

가장 인상 깊은 연출은 침묵 속에서 진행되는 장면들이다. 밤새워 참호를 지키고, 동료의 시신을 묻으며, 눈을 감은 채 다음 날의 공격을 준비하는 병사들의 모습은 전쟁의 잔혹함을 화려한 폭발보다 더 실감 나게 전달한다.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지뢰밭 장면,
버려진 시체 더미 속에서 생존자를 찾는 장면,
그리고 누구를 향해 총을 쏴야 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총구를 내리는 병사의 모습 등은
그 자체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이 전쟁에 승자란 있는가?”
“정말 지켜야 했던 것은 무엇이었나?”

미술과 음향, 카메라 워크 또한 매우 탁월하다.
좁은 공간을 이용한 카메라는 고지의 갑갑함과 전장의 공포를 잘 살려낸다.
무너진 참호, 붉게 물든 흙바닥,
한 줌의 명령으로 모두가 죽음으로 향하는 순간—
이 모든 것이 다큐멘터리처럼 사실적으로 표현된다.

영화 속 병사들은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누군가는 상부의 명령에 무감각하게 복종하고,
누군가는 살기 위해 명령을 무시하며,
누군가는 동료를 구하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이처럼 <고지전>은 각 인물을 ‘전형적인 군인’이 아닌
전쟁 속에서 자기만의 윤리와 감정으로 버티는 인간으로 그려냄으로써
관객이 더 깊이 감정이입할 수 있도록 만든다.

이 영화는 총과 포탄으로 가득 찬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고요한 참호 안에서,
비에 젖은 군화 안에서,
잠 못 드는 병사의 눈빛 속에서
진짜 전쟁의 참혹함과 인간의 고통이 묻어난다.


🎯 총평 –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총이 멈춰도

<고지전>은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 중에서도 가장 현실적인 감각과 깊은 문제의식을 가진 작품입니다.
‘고지’라는 좁은 공간 안에서 펼쳐지는 전투를 통해,
국가가 아닌 개인, 전투가 아닌 감정, 명분이 아닌 생존에 초점을 맞춥니다.

무의미한 싸움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병사들,
진실을 알고도 진실을 쓸 수 없는 장교,
그리고 누군가의 죽음 위에 올라가는 전공 훈장—
이 영화는 “과연 이 전쟁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가?”라는 질문을
세 시간 가까운 러닝타임 내내 꾹꾹 눌러가며 관객에게 묻습니다.

전쟁이 배경이지만, 이 영화는 전쟁보다 ‘사람’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서도 여전히 유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