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죽음을 지킨다는 약속 – 비극으로 시작된 처절한 복수극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발레리나>는
감각적인 스타일과 독특한 정서가 돋보이는 하이퍼 누아르 액션 복수극입니다.
제목만 보면 우아하고 서정적인 무용영화를 떠올릴 수 있지만,
실제로는 피와 고요함, 슬픔과 광기가 공존하는 극한의 감정 액션극에 가깝습니다.
영화는 전직 보디가드 옥주(전종서)가
절친 ‘민희’(박유림)의 죽음 이후
그녀의 복수를 결심하며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민희는 옥주에게 죽기 전 마지막 문자 하나만을 남깁니다.
“나쁜 놈을 죽여줘.”
그 문자 하나가 전부입니다.
옥주는 그 한 문장을 믿고,
그 문장 안의 진실을 찾아가고,
결국 그 문장의 끝에서 피로 물든 복수를 실현합니다.
영화는 잔인하고 폭력적인 세계를 그리지만,
이야기의 중심은 결국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과 ‘사랑하는 이를 위한 분노’**입니다.
다소 과장된 액션이 있을지라도,
그 모든 행위의 근저에는
상실과 애도의 감정이 강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발레리나>는 단순한 복수극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고통을 감각적으로 소화한 정서극에 가깝습니다.
한 여자가 사랑하는 이를 위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를
무채색의 미장센과 강렬한 액션 안에 풀어낸 영화입니다.
2. 🎭 전종서의 재발견 – 무표정 속에 숨겨진 깊은 감정
이 영화의 중심은 단연 전종서입니다.
그녀는 <버닝>과 <콜>에서 이미 파격적이고 감정이입 어려운 캐릭터들을 완벽히 소화해냈지만,
이번 <발레리나>에서는 고요한 광기와 절제된 감정선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옥주는 과거 보디가드였지만,
지금은 외롭게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말도 거의 없고,
감정을 겉으로 표현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카메라는 그녀의 눈을, 숨소리를,
가끔씩 떨리는 손끝을 집요하게 비춥니다.
전종서는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침묵으로 연기하는 배우입니다.
옥주의 감정은 분노나 증오라기보다는
오히려 깊은 슬픔, 상실, 죄책감에 더 가깝습니다.
그리고 그런 감정이 하나둘 쌓이면서
결국 피의 복수로 이어지죠.
그녀는 총을 쏘고, 칼을 휘두르고,
맨몸으로 상대를 제압하면서도
한 번도 ‘액션 히어로’처럼 행동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액션은 기술적인 멋보다는 감정의 해소처럼 느껴집니다.
이 영화가 전종서를 중심으로 진행된다는 건,
캐릭터 드라마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전종서는 이 영화가 요구하는 감정의 층위를
충분히, 오히려 너무나 조용하게 채워냅니다.
또한, 후반부로 갈수록 그녀의 연기는
복수가 끝나고 남는 공허함까지 설득력 있게 전달하며
단순한 액션 그 이상의 감정 여운을 남깁니다.
3. ⚙️ 스타일이 말하는 영화 – 미장센, 음악, 액션의 감각적 삼중주
<발레리나>는 스토리보다 감각과 스타일로 이야기하는 영화입니다.
이병헌 감독 특유의 감각적인 연출은
이번 영화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됩니다.
먼저 시각적으로 가장 인상 깊은 건 색채의 활용입니다.
전체적으로 영화는 무채색에 가깝고,
주인공 옥주의 세계는 회색빛입니다.
그러나 클럽, 살인 장면, 특정 인물의 등장 등
극적인 순간마다 붉은빛, 형광 조명, 강렬한 원색들이
감정의 폭발 지점을 시각적으로 명확히 보여줍니다.
이러한 색채 연출은
옥주의 내면 상태를 감각적으로 표현해주며,
때로는 관객이 감정적으로 몰입할 포인트를
시각적으로 알려주는 장치가 되기도 합니다.
또한 음악의 사용도 매우 인상적입니다.
락, 일렉트로닉, 재즈풍의 선율이
각 장면의 감정에 맞게 편집되며
한 편의 뮤직비디오처럼 보일 정도로
리듬감 있는 전개를 이끌어냅니다.
특히 총격전이나 추격전 장면은
음악이 없다면 완성되지 못할 정도로
사운드와 영상의 조화가 탁월합니다.
액션 시퀀스 역시 고전적인 액션보다는
타격감보다 스타일을 중시한 동작이 주를 이룹니다.
슬로우 모션, 원 테이크 느낌의 카메라 워크,
거친 숨소리와 절제된 사운드 디자인이
옥주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예술적으로 보이게 만들죠.
이렇듯 <발레리나>는 복수극이라는 장르적 틀을 빌려,
그 안에 미술적 감각, 음악적 리듬, 심리적 텍스처를 더한
독특한 ‘감성 액션 영화’로 자리매김합니다.
🎯 총평 – 한 줄기 눈물로 시작된 복수, 그리고 아름다움의 정의
<발레리나>는 단순한 복수극이 아닙니다.
이 영화는 상실에서 비롯된 감정을
액션이라는 형태로 분출시키는 한 여자의 감정극이자 심리극입니다.
전종서라는 배우의 묵직한 존재감,
감각적으로 연출된 장면들,
고요하지만 폭발적인 감정의 흐름.
이 모든 요소가 어우러져
<발레리나>는 장르의 문법을 뛰어넘은 스타일리시 감성 누아르로 완성됩니다.
혹자는 “이 영화는 잔혹하다”고 말할 수 있고,
또 누군가는 “이토록 아름다운 복수극은 처음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두 말 모두 맞습니다.
잔혹하고 아름답습니다.
복수를 통해 어떤 것도 회복되지 않지만,
옥주는 마지막까지 약속을 지킵니다.
“죽음을 지켜줬다”는 그 약속 하나로
한 편의 영화가 시작되고 끝이 납니다.
피로 물든 무용.
슬픔으로 물든 춤사위.
그게 <발레리나>가 말하는 진짜 액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