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한 통의 전화로 시작된 악몽, 그러나 ‘멈추지 않은 사람’
<시민덕희>는 2016년 실제 중국 보이스피싱 콜센터를 고발한 ‘덕희’라는 평범한 여성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영화는 제주도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며 딸과 살아가는 덕희(라미란)가
한 통의 전화로 전 재산을 잃게 되면서 시작된다.
처음에는 흔한 보이스피싱 피해자로 남을 뻔했던 덕희는
이내 “왜 당했는지”가 아니라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에 집중한다.
그리고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현실,
경찰의 무관심, 제도의 허점을 직접 부딪혀가며 파헤치기 시작한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덕희가 ‘히어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는 싸움에 능하지도, 정보에 밝지도 않다.
하지만 그녀에겐 “멈추지 않는 힘”이 있다.
딸을 위해, 나와 같은 피해자가 더는 없도록 하기 위해
무지와 분노, 두려움을 딛고 직접 행동에 나서는 한 사람의 진심.
<시민덕희>는 이 작고 위대한 용기를 정직하게 그려낸다.
2. 🎭 라미란이라는 이름, 분노와 눈물의 온도를 조절하다
이 영화에서 라미란은 연기자가 아닌 **그냥 '덕희 그 자체’**다.
그녀는 무너지는 감정을 억누르고,
웃으면서도 흔들리는 눈빛을 보여주며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현실을 생생히 표현한다.
초반에는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엄마이자 자영업자 덕희의 모습을
유쾌하게 그리다가,
피해 이후 점점 침착하지만 냉랭하게 변해가는 감정선을
과장 없이 설득력 있게 쌓아 올린다.
특히 피해 사실을 깨닫고 은행 창구에서 무너지는 장면,
수사기관의 무성의한 태도에 절망하며
“왜 아무도 책임지지 않아요?”라고 외치는 장면 등은
관객의 숨을 멎게 만들 만큼 진심이 가득하다.
라미란은 코미디와 드라마를 넘나드는 배우지만,
이번 <시민덕희>에서는 그 어떤 작품보다 절제된 분노와 절박한 용기를 보여준다.
감정을 들이붓기보다는 꾹 참고 말하는 톤에서 더 큰 울림을 준다.
관객은 그녀의 연기를 통해
피해자가 아닌, ‘행동하는 시민’으로 변화하는 한 사람의 여정을 깊이 공감하게 된다.
3. 💻 보이스피싱, 더 이상 뉴스 속 남의 일이 아니다
영화 <시민덕희>가 다루는 주제는 보이스피싱이다.
하지만 단순히 한 피해자의 이야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영화는 이 범죄가 어떻게 구조적으로 반복되고,
어떻게 국가와 시스템이 그것을 방조하는가를 날카롭게 파헤친다.
보이스피싱 콜센터는 외국에 있고,
범인들은 유령처럼 존재하며,
피해자는 늘 ‘호구’ 취급을 당한다.
경찰도, 금융기관도 “돌려받기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덕희는 그런 현실에 “왜 그래야 하냐”고 되묻는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증거를 수집하고,
실체 없는 범죄조직을 뒤쫓기 위해 발로 뛴다.
영화는 이 과정에서 단순한 피해자-가해자 구조를 넘어서
제도적 허점, 사회의 무관심, 고립된 개인의 고통을 사실적으로 담아낸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보이스피싱은 단지 어리석은 피해자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사회적 문제라는 걸 절감하게 된다.
그리고 그걸 막는 유일한 방법은
“가만있지 않는 시민의 목소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4. 🧭 분노에 그치지 않는 영화, 변화의 출발선
<시민덕희>는 단순히 피해자의 분노를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다.
그 분노가 어떻게 실천으로, 그리고 사회 변화의 씨앗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덕희는 피해자로 시작하지만,
결국엔 이 사회의 허점을 파고들고
실체 없는 범죄를 밝히는 데 성공한 최초의 시민이 된다.
이 영화가 감동적인 이유는
그녀가 거대한 조직을 무너뜨리는 히어로가 되어서가 아니다.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 무너질지언정 침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감독 박영주는 <시민덕희>를 통해
우리 사회가 어떤 목소리에 반응하고,
어떤 목소리를 외면해왔는지 성찰하게 만든다.
영화는 분노를 전시하지 않고,
그 분노를 어떻게 견디고 밀어붙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
덕희가 다시 전화기를 들고 누군가에게 말할 때
그 말은 단지 대사가 아니라
지금도 어디선가 피해를 겪고 있을 누군가에게 건네는 응원의 신호처럼 느껴진다.
🎯 총평 – 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 용기 낸 한 사람의 이름
<시민덕희>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만,
단순히 ‘감동 실화 영화’의 틀에 갇히지 않는다.
사회 고발 영화이자 여성 서사이고,
또한 정의와 책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성찰의 작품이다.
라미란이라는 배우의 진심 어린 연기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한 편의 영화를 넘어선 울림을 만든다.
마지막에 “나는 시민 덕희입니다”라는 말이
영웅의 외침이 아니라, 모두가 될 수 있다는 선언처럼 들리는 영화.
지금, 우리도 “가만있지 않겠다”는 말을 해야 할 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