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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정이> 리뷰 – 전쟁보다 더 슬픈 기억, AI에 새겨진 모성의 이름

by bloggerjinkyu 2025.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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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인간을 닮은 기계, 정이를 기억하는 방식에 대하여

<정이>는 표면적으로는 SF 영화다.
지구가 환경오염으로 생존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 인간이 우주로 이주한 시대,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인공지능 병기를 개발하는 연구소가 배경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매우 인간적이다.
‘기억이 인간을 정의하는가’,
‘사랑과 모성은 복제될 수 있는가’라는 철학적 물음이다.

주인공 윤정이(김현주)는 전설적인 용병이자, 딸을 남기고 죽은 존재다.
그녀의 전투 데이터를 바탕으로 만든 AI 전투 병기 ‘정이’는
매일 반복되는 전투 시뮬레이션 속에서 죽고, 다시 살아난다.
문제는, 그녀가 매번 ‘실패’한다는 것이다.
무언가 이상하다.
지능도 완벽하고, 신체 반응도 빠르지만,
어딘가 결정적인 순간에 망설이고 무너진다.

이 AI에게 입력된 것은 단순한 전투 데이터뿐만이 아니라,
윤정이의 인간으로서의 감정, 그리고 딸에 대한 모성까지 포함되어 있다.
즉, 윤정이라는 존재는 단지 싸우는 병기가 아니라,
죽기 전까지도 ‘엄마’였고,
AI 정이 역시 그 기억을 잃지 못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영화는 SF를 가장해
‘기억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가’,
그리고 ‘감정이 효율보다 우선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AI가 인간을 닮아가는 것이 기술의 진보라고 한다면,
이 영화는 역으로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기계 안의 인간성을 통해 조명하고 있다.


2. 🧠 SF보다 더 깊은 감정, 정이와 딸의 모성 서사

정이의 AI 모델 개발을 담당하는 연구자는 다름 아닌 그녀의 딸, 서현(박소이 / 성인 역 류경수)이다.
어린 시절 암투병 중인 자신을 위해 전장으로 나간 엄마를 기억하며 살아온 서현은,
자신의 손으로 엄마의 전투 데이터를 복제하고,
시뮬레이션 속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엄마의 죽음을 매일 확인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운명을 지녔다.

서현은 정이라는 인공지능이 완벽하게 병기로 태어나기를 원하지만,
동시에 엄마의 ‘기억’과 ‘인간성’을 없애는 과정에
점점 스스로 괴로워한다.
윤정이는 엄마였고, 사람이며,
딸을 너무도 사랑했던 한 명의 인간이었다.
그런 존재를 ‘효율적인 전투 병기’로 만들기 위해
감정과 동기를 제거하려는 시도는
결국 딸에게 있어 **‘엄마를 또 한 번 죽이는 일’**이 된다.

이 영화는 화려한 액션과 특수효과를 보여주기보다는,
딸이 엄마를 복제하고, 또 지우는 과정을 통해
모성과 인간성, 그리고 기억이라는 주제를 서정적으로 풀어낸다.

특히 후반부, 서현이 AI 정이에게 감정을 주입한 채
시뮬레이션을 끝내려는 순간은
과학적 윤리를 넘어선 모성의 결단이자,
딸이 엄마를 진정으로 놓아주는 과정으로 해석된다.
과연 인간은 기억을 버릴 수 있을까?
정이와 서현의 관계는
기억을 간직하는 방식이 때로는 기술보다 더 진보적인 감정임을 보여준다.


3. ⚙️ 시선을 끄는 비주얼과 그 너머, 시스템의 무자비함

<정이>는 SF 장르의 매력을 충분히 살린다.
디스토피아적 세계관,
사이버 기술과 결합된 전투병기,
그리고 시뮬레이션 내부의 격렬한 액션 시퀀스 등
비주얼적으로도 완성도가 높다.
특히 윤정이 AI가 전장에서 싸우는 장면들은
카메라의 움직임과 CGI가 잘 어우러져
긴장감 넘치는 몰입을 이끌어낸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짜 공포는
총격전이나 폭발이 아니라,
‘시스템’이라는 이름 아래 인간이 도구로 전락하는 현실이다.
정이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연구소는
효율, 성공률, 투자 가치에 따라
한 인간의 ‘존재’를 평가한다.
윤정이의 삶과 기억, 딸을 위해 희생한 모든 감정은
수치화되고, 삭제되며,
‘병기로서 성공할 수 없다면 폐기하라’는 명령 앞에 놓인다.

이처럼 영화는 기술 발전의 이면에 존재하는
비윤리적 시스템과 자본의 논리를 고발한다.
서현이 연구를 포기하고 정이를 해방시키려는 결정을 내리는 순간,
우리는 이 영화가 단순한 SF가 아닌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가’에 대한 정면 질문임을 깨닫게 된다.

정이는 전쟁터에서도 망설였고,
그 망설임의 이유는 사랑과 윤리였다.
그 망설임이 실패로 기록되는 세계에서
서현은 그 ‘실패’를 지켜내기 위해 싸운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기계보다 더 인간적인 선택이었다.


🎯 총평 – 기술이 닿지 못한 감정, 정이라는 이름으로 남다

<정이>는 정통 SF 영화처럼 시작되지만,
그 끝은 아주 인간적이고 감성적이다.
기술과 윤리, 기억과 효율성, 사랑과 복제 사이의
수많은 질문을 던지면서
‘정이’라는 이름이 상징하는
모성, 인간성, 그리고 기억의 본질을 곱씹게 만든다.

화려한 설정 뒤에 숨겨진
조용하고 아픈 감정.
<정이>는 그것을 그 누구보다 따뜻하게 담아낸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