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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터널> 리뷰 – 무너진 콘크리트 속, 인간성과 시스템이 드러나다

by bloggerjinkyu 2025.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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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살려야 하는가, 포기해야 하는가” – 생존을 둘러싼 사회적 리얼리즘

<터널>은 단순한 재난 영화로 보기에는 너무 묵직하고,
한 사람의 생존을 넘어서 우리 사회의 시스템, 구조, 그리고 인간성을 되묻는 문제작입니다.

이야기는 매우 단순한 사건에서 시작됩니다.
자동차 영업 대리점장 ‘정수’(하정우)는
퇴근길에 산을 가로지르는 터널을 지나던 중
터널이 갑작스럽게 무너지는 사고를 겪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콘크리트 더미 속에 갇히게 되죠.

그 안에는 휴대폰, 차량 내부 공기, 물 한 병, 딸의 생일 케이크—
그리고 ‘언제 구조될지 모른다는 불안’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정수가 구조되기까지의 ‘생존기’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습니다.
그를 구조하려는 사람들, 그리고 구조를 ‘관리하려는’ 사람들,
심지어 언론과 여론의 이중적인 반응까지
정수의 생존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시험대에 오르게 되는 문제로 확대됩니다.

터널이 무너진 원인을 두고 공무원들은 책임을 회피하고,
구조 작업은 예산과 여론에 따라 휘청이며,
피해자 가족은 점점 무기력해집니다.

“하루가 지나면 생존 가능성이 낮아진다.”
“다른 공사도 해야 하니까 터널은 포기해야 한다.”

그 한 마디 한 마디는 영화가 아니라
어쩌면 지금 현실에서 들릴 법한 말들입니다.
터널 속이 아니라, 터널 밖이 더 무너져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많습니다.


2. 🎭 하정우의 1인극 – 현실에 발붙인 생존 연기의 진수

<터널>에서 가장 압도적인 요소는 단연 하정우의 밀도 높은 1인 연기입니다.
정수라는 인물은, 초반에는 일상의 한 조각처럼 가볍고 유쾌하게 그려지지만
갑작스럽게 무너진 터널 속에서
극단적인 생존 상황에 내몰리면서
그는 점차 절망, 분노, 체념, 희망을 오가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겪게 됩니다.

하정우는 이 모든 감정선을 과장 없이, 섬세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전달합니다.
터널 안에서의 연기는
거의 대부분이 혼잣말이나 표정, 몸짓에 의존하는데도
관객은 지루할 틈 없이 그의 생존 본능에 몰입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휴대폰이 끊기기 직전 마지막 통화를 하며
가족에게 무심하게 "괜찮다" 말하는 장면.
배고픔과 탈수에 시달리며
조금씩 무너져가는 정신 상태를 보여주는 장면.
그리고,
구조팀이 포기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광기와 슬픔이 뒤섞인 눈빛.

이 모든 장면에서 하정우는
“저 상황이 내 일이면 어땠을까”라는 감정 이입을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불러일으킵니다.

또한, **도움이 될 듯 등장하는 개 ‘탱이’**와의 교감은
정수의 고립감을 부드럽게 중화시키면서도
극한 상황에서도 작은 위로와 유대가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줍니다.

그 어떤 화려한 특수효과나 대사보다도
하정우의 얼굴 하나, 호흡 하나가 이 영화의 중심을 단단히 지탱하고 있었습니다.


3. 🏗️ 무너진 건 터널만이 아니다 – 한국 사회 시스템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

<터널>은 단순히 "남겨진 자가 어떻게 살아남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더욱 중요한 질문은

“밖에 있는 우리는, 그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입니다.

구조 작업은 점차 지지부진해지고,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들어가는 자원과 비용에 대한 언론의 공세가 이어지고,
정부는 대책 회의만 하며 시간을 끕니다.
영화 속에서는 무너진 터널보다 공공기관의 대응 체계와 정치적 책임 회피가 더 무섭게 느껴집니다.

감독 김성훈은 이 지점을 날카롭게 짚어냅니다.
특히 ‘사람 생명보다 체면과 체계가 먼저인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들이 많습니다.
이를테면 구조 작업 도중의 사진 촬영,
사고 현장을 배경으로 진행되는 정치인의 브리핑,
실종자 가족을 향한 비난 여론 등.

이 영화의 진짜 공포는
좀비도, 괴수도, 자연재해도 아닙니다.
바로 ‘책임 없는 시스템’과 ‘감정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 속에서도 끝까지 정수를 포기하지 않는

구조대장(오달수)과 터널 밖에서 사력을 다해 남편을 기다리는 정수의 아내(배두나)의 모습은
그 무력한 시스템 속에서도 희망이라는 불씨가 여전히 꺼지지 않았다는 메시지로 다가옵니다.


🎯 총평 – 무너진 세상 속, 인간다움을 지켜낸 사람들의 이야기

<터널>은 단순한 재난 서바이벌 영화가 아닙니다.
그 안에는 우리 사회가 위기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한 사람의 생명을 어떻게 다루는지에 대한 차가운 질문
이 담겨 있습니다.

하정우는 혼자서도 강했고,
배두나는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을 잊지 않았으며,
오달수는 ‘현장의 논리’가 아닌 ‘사람의 감정’을 지킨 구조대장이었습니다.

영화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그 속에 당신이 갇혀 있었다면,
사회는 지금과 같은 태도를 취했을까요?”

<터널>은
기술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완성도 높은 재난 영화이자,
무너진 세상 속에서도 사람의 가치를 지키려는 이들에 대한 따뜻한 기록입니다.

우리는 터널 속이 아니라,
그 바깥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