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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1987> 리뷰 – 그날을 기억하는 모든 이에게, 역사는 ‘현재형’이다

by bloggerjinkyu 2025.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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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1987> 리뷰 – 그날을 기억하는 모든 이에게, 역사는 ‘현재형’이다

1. 🕯️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습니다” – 거짓 위에 세워진 진실의 시작

<1987>은 시작부터 관객의 심장을 조여옵니다.
실제 역사적 사건인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뜨겁고 비통했던 한 해,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를
사실적이고 치밀하게 그려낸 영화입니다.

이야기의 발단은 1987년 1월 14일.
서울대학교 학생이었던 박종철 군이 경찰 조사 도중 고문에 의해 사망한 사건입니다.
영화는 이 사건이 발생하고,
그것을 덮으려는 권력의 시도와
그 시도를 막고 진실을 알리려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다층적인 인물 구조를 통해 긴장감 있게 펼쳐 나갑니다.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
이 황당한 경찰 발표 한 줄은
그 시대 권력이 진실을 어떻게 왜곡하고,
그 거짓을 어떻게 반복하며
국민을 우롱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하지만 <1987>은 이 문장을 단지 ‘분노의 소재’로만 쓰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말 한 줄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들었는지를
서사 전체를 통해 증명합니다.

검찰 내부에서 진실을 알고도 묻어버리려는 자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정의를 지키려는 검사(하정우),
진실을 기사화하려는 기자들,
이름 없이 활동하던 민주화 운동가들,
교도소 간수, 신부, 대학생, 심지어 고문 경찰까지—
<1987>은 이 거대한 사건을
특정한 ‘주인공’의 시선으로만 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각기 다른 위치에 있던 이들이
어떻게 하나의 진실로 연결되고,
결국 국민의 분노를 촉발시키는 흐름으로
‘진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매우 입체적으로 그려냅니다.

이런 구성은 사건의 크기보다,
그 사건을 둘러싼 인간 군상의 움직임에 집중하게 만들며
그 시대를 살아본 사람들에겐 기억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겐 살아있는 역사 교과서 같은 역할을 해줍니다.


2. 🧍 이름 없는 사람들의 용기 – 그들이 바꾼 시대

<1987>의 가장 큰 미덕은
역사를 바꾼 이들이 꼭 ‘거대한 영웅’이 아니었다는 점을 정직하게 보여준다는 데 있습니다.
영화에는 혁명을 계획하거나 대중을 선동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는 없습니다.
대신 이 영화에는 ‘자기 자리에서 진실을 선택한 평범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유해진이 연기한 교도관 ‘한병용’은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자신이 관리하던 재야 인사가 고문으로 사망했다는 소문을 듣고,
위험을 감수하고 사건의 실체를 외부로 알리는 데 일조하게 되죠.
그는 운동가도, 정치가도 아닙니다.
단지 양심을 저버릴 수 없었던 한 명의 시민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의 한 선택은
거대한 도미노의 한 조각으로 작용하며
결국 진실을 외부로 퍼뜨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또한, 김태리의 ‘연희’는 민주화 운동에 처음부터 관심이 있었던 인물이 아닙니다.
그녀는 삼촌(유해진 분)을 통해
우연히 시위 현장과 재야 운동의 실체를 접하게 되고,
그 속에서 점점 생각과 감정이 변화해 갑니다.
이 과정은 관객이 이 이야기에 더욱 몰입하게 만드는 장치이자
‘보통 사람도 시대를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중요한 흐름입니다.

박희순이 연기한 ‘윤기자’, 이희준의 ‘최검사’,
강동원이 특별 출연한 고 이한열 열사 등
실존 인물을 기반으로 한 캐릭터들 또한
그 시대를 진심으로 살아낸 ‘조연 같은 주연들’입니다.
이들 모두가 역사의 최전선에 서지는 않았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작은 진실을 지키려는 용기를 보여줌으로써
결국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주역이 됩니다.

<1987>이 감동적인 이유는
이 영화가 위대한 영웅담이 아니라
‘진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진짜 사람들의 선택이 쌓여
거대한 ‘6월 항쟁’이라는 민중의 외침으로 이어졌음을
영화는 감동적으로, 그러나 무겁게 증명합니다.


3. 🎬 뛰어난 연출과 배우들의 앙상블 – 시대를 체험하게 하는 영화적 완성도

감독 장준환은 <1987>을 통해
정치적 메시지와 감정적 여운, 그리고 드라마적 몰입을
균형감 있게 엮어내며
역사 영화가 갖추어야 할 거의 모든 요소를 탁월하게 구현해냈습니다.
특히 관객이 ‘분노’보다는 ‘공감’과 ‘연대’를 먼저 느낄 수 있도록
영화의 톤과 분위기를 차분하게 조절한 연출은 인상 깊습니다.

각 인물들의 감정 변화와 선택의 순간이
과장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흐르게 만들며,
관객이 영화 속 한 인물처럼 그 시대를 ‘경험’하도록 구성해냈습니다.
다큐멘터리적 연출보다는
드라마적인 완성도를 높이되,
실제 사건에 대한 고증과 묘사에 있어서도 치밀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를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은
배우들의 놀라운 연기 앙상블입니다.
김윤석은 악역인 박처장 역할을 맡아
광기와 냉혈 사이의 복합적인 인간상을 보여줍니다.
그는 단순한 악인이 아니라
‘권력에 중독된 시대의 산물’로 그려지며
관객에게 불쾌함과 동시에 ‘경계심’을 심어줍니다.

하정우의 최검사는 날카로우면서도 유쾌한 캐릭터로
무거운 영화에 숨통을 트이게 하며,
극중에서 ‘제도의 내부에서 진실을 지키는 사람’의 상징이 됩니다.
유해진은 따뜻하면서도 절박한 시민의 감정을 고스란히 표현하며
이야기의 정서적 중심축을 형성합니다.
김태리는 관객의 시선과 같은 존재로,
역사를 간접적으로 처음 접하는 인물로서
우리가 감정적으로 따라가야 할 여정을 잘 이끌어줍니다.

카메라, 조명, 음악 등도
관객이 몰입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합니다.
특히 이한열 열사가 쓰러지는 장면,
그리고 마지막 시민들의 행진을 담은 엔딩 장면은
스크린을 넘어 심장을 울리는 ‘집단적 기억의 재현’으로 기능합니다.


🎯 총평 – 역사는 기록이 아니라 기억이다

<1987>은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영화가 아닙니다.
그 해를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두려움과 분노, 그리고 희망
지금 이 순간에도 유효하게 되살려낸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말합니다.
진실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고,
그리고 아무리 권력이 덮으려 해도
사람들의 용기와 연대는 언젠가 반드시 그 진실을 세상 밖으로 끌어올린다고.

1987년은 끝났지만,
그 정신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1987>은 지금 이 시대에도,
앞으로도 계속 봐야 할 영화입니다.